노회찬 “문제는 ‘경제’민주주의”

전임자 임금 장기적 대안은 산별체제 전면화

2004년 총선에서 ‘노회찬 어록’을 유행시키며 국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었던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18일(금) 개최된 우리 연맹과의 간담회에서도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얼굴이 좀 까매졌지요?” “대통령 잘 못 만나 아스팔트 위에서 살다보니...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까만 얼굴이 대세인 것 같아 위안이 됩니다.” (좌중 웃음)

“지지율 50% 속상해 할 것 없어”

노회찬 대표는 이명박 정부 지지율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지지율이 50% 넘어가는 것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정운찬씨를 총리로 지명할 즈음 언론 인터뷰에서 50% 넘을 거라고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60%는 넘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지율 상승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다만 한계 지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면 60%는 충분히 넘을 텐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내부 갈등구조 지형과 조건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50% 지지율이 몇 달은 가겠지만 MB정부의 ‘서민정책’이 속빈강정이라는게 드러나면 조만간 다시 내려갈 것”이라며 “너무 마음 상하시지 말라”고 간담회 참가자들을 위로(?)했다.

“3년 6개월 버티기만 하면 행복해질까?”

노 대표는 또 “3년 6개월만 견디면 된다는 말도 들리던데 MB보다 더 나쁜 정권이 들어서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라며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이명박정부 이후 ‘좀 더 나은 정부’는 희망사항일뿐 이라고 일축했다. 노 대표는 MB정부의 약한 고리이자 진보세력이 착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민주주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4일전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우리 연맹과의 간담회에서 거론한 바 있는 ‘민주주의 위기론’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노 대표는 “87년 이후 20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는 더디지만 점진적으로 신장돼 왔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남아있고 MB정부 이후 인권상황이 다소 악화된 측면은 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가 ‘흐름’으로써 더이상 후퇴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포만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주의의 또다른 축인 ‘경제 민주주의’문제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치 성향이 무척 다른데도 불구하고 경제관료와 경제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 87년 6월 항쟁의 요구는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요구는 아직도 대부분 유효하다는 점 등이 경제 민주주의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피해자는 누구인가?

노 대표는 “MB정부의 ‘잃어버린 10년’ 담론이 서민과 재벌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고도 했다. 잃어버린 10년은 바로 신자유주의 10년과도 같은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 노동자가 두 배로 늘어나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된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심해지고 있으니까 서민들이 ‘잃어버린 10년’에 가장 공감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벌들은 지난 10년간 경제적으로도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권력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있어 ‘잃어버린 10년’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이나 다 동의되는 레토릭이라는 주장이다. 노 대표는 “경제문제와 분배문제에 있어 누가 해법을 보여주는가가 관건”이라면서 “여전히 한나라당이 우위에 있다”고도 지적했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이유는 우리 국민이 보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양극화가 기본적인 문제인데 한쪽(민주당)은 지난 시절 경제 망친 집단이라고 보고 다른 한쪽(한나라당)에는 기대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진보세력은 선택대상도 아닌 ‘경제망친 이들의 2중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며 실랄한 자기반성을 했다.

“정치인 집단이 아닌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구현해야”

노 대표는 “취약점이 ‘부활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몇가지 반성과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이에 저항하고 투쟁의 계기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진보정당이 2004년도에 14%, 2008년도에 18%까지 지지를 받았는데 꾸준히 이어지지 못한데는 국민들이 ‘우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의 이념을 펼치는데 급급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비정규, 특수고용 등 노동문제는 모두 민주노총에 위탁하고 진보정당은 민주노총을 대변하는, 그런 기계적인 역할 분담만 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농성장이나 투쟁현장 방문도 많이 하긴 했지만 정부의 반노동정책을 저지하는 것만으로는 안되며 국민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직접 참여하는 ‘운동’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의도정치’가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운동’으로 승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표는 또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정’도 강조했다. “MB정부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지난 10년, 20년 평가에 기초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한 노선을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 편의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면 정치하기 좋아하는 집단으로 인식되며 몇몇은 정치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정신은 실현되기 어렵다. 더디 가더라도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

“전임자임금 장기적 대안은 산별체제 전면화”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올 하반기에 정부안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싸워야 한다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산별체제 전면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의 경우 일부 산별노조로 전환됐지만 완전한 의미의 산별조직은 아직 아닌 만큼 광범위하게 미조직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고 조직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면적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고 전업활동가와 전임자의 임금이 보장되는 노조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 하반기 전임자 임금 처리 전망을 묻는 질문(금융감독원노조 김우진 위원장 당선자)에는 “지방선거 등 몇 가지 변수가 있는데, 정부 입장을 관철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는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고 일부는 지급하지 않는 등 희안한 안이 나올 수도 있는데 노조 약화 전략의 일환임을 알아야 한다”며 원칙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넘어 진보대연합으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 있어 분당과 탈당은 여전히 주요한 화두였다. 이두헌 연맹 부위원장은 “탈당(분당)했을 때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일 텐데 현재 진보신당은 노동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노동자정치세력화 태도에 대해 질문했다. 노 대표는 “과거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연석회의가 있었는데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하고 협조하고 조율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진찍는 자리에 불과했다”고 평하며 “노동현장에서의 정치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들의 경우 당비내고 세액공제하고 선거때 투표하고, 그것 이외에는 당과 나 사이에 아무일도 없다. 노동과 정치가 만나서 노동내에서의 정치, 정치내에서의 노동을 활성화시키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도화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당의 주체인 진보신당이 대통합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마화용 연맹 정치위원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진보신당에는 민주노동당원 출신 반, 그렇지 않은 당원이 절반 있다”며 당내에서 논의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또 “양당이 통합한다고 해서 모든 진보세력이 박수치는 것은 아니”라며 당위론을 넘어서 현실과 조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표 개인의 의견은 통합론으로써 사노준(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 등 진보세력이 폭넓게 모이는 진보대연합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진보정치세력 통합 노력에 대해서는 “지도부가 골을 메우는 방향으로 가져가길 바라며 문제를 더 어렵고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진보신당의 취약점인 기업정책 조만간 마련

금융권 임금삭감 압력, 당 차원에서 이데올로기 투쟁

농개위의 신경분리안은 노동자 농민 주장을 왜곡해

장도중 한국신용평가정보노조 위원장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강조하신만큼 재벌 개혁에 대한 입장을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노 대표는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재벌규제가 풀어지기 시작해, (에버랜드 사태를 보면) 지금은 입법부, 행정부를 넘어서 사법부까지 동원돼 재벌체제를 강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재벌 해체로 오해하는데 잘못된 기업연결방식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진보신당의 취약점이기도 한 기업정책은 조만간 마련해서 밝힐 예정”이라고 답했다. 금융감독원노조 김우진 위원장 당선자는 “정부가 감사원을 내세워 금융권 임금삭감과 구조조정을 지휘하고 있는데 정치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논의가 지지부진한 측면에 동의한다”며 “정부와 보수언론이 대기업노조, 귀족노조 운운하며 몰아가고 있는데 이데올로기 투쟁이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알리고 사회적 여론을 주도하도록 설득력있게 홍보하는 게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신경분리에 대해서는(전국축협노조 조용성 사무처장) “(정부와 농개위가 추진하는 안은) 애초에 우리가 가려했던 신경분리와 다르다”고 전제하고 “노-농 갈등으로 가지 않도록 신경분리의 본질을 분명히 하고 협동조합 정상화의 올바른 모습을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달 증명’이 秘技”

간담회를 마무리하면서 대한생명노조 염제상 위원장이 “‘노회찬 코드’라 할 수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노 대표는 “이제는 살인업계를 떠났다”면서도 비기(秘技)를 일부 알려줬다. 일단 “웃기겠다고 의식하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정치인이나 토론자들은 길게 얘기하면 잘 안듣기 때문에 짧게 핵심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진보정당 초창기에는 심지어 손석희씨마저 토론기회를 상대적으로 적게 줬기 때문에 남들 두세번 이야기할 때 한번 기회를 잡게 되면 상대방 머리에 내 의견이 남아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토론했다”고 밝혔다. 노 대표는 “연애편지를 전달한 것이 성공한 게 아니라 사랑의 감정을 확실히 전했는지가 관건인 것처럼, 내가 말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내 말이 확실히 전달됐는지, ‘배달증명’을 하다보면 누구나 살인업계에 진출할 수 있다”며 노조 간부 동지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야4당 대표 초청 간담회는 다음주 화요일(22일)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간담회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