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민주주의 위기는 우리의 잘못”

연맹 초청 ‘야4당 대표 간담회’ 14일부터 시작

우리 연맹이 주최하는 ‘야4당 대표 초청 간담회’가 지난 14일(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손기정문화체육센터 강당에는 준비된 110여석의 자리가 모자라 보조의자를 사용할 만큼 가맹조직 동지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간담회에 앞서 약 30분간 진행된 정세균 대표의 모두 연설은 민주주의에서 시작해 노동, 민생, 인권, 10월 재보선, 비정규직 노동자,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노-정 연대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괄했다.

“민주주의 위기는 우리(민주당)의 잘못”

정세균 대표는 민주주주의 문제로 기조 연설을 시작했다. “민주주의 위기는 우리(민주당)의 잘 못이다. 남은 기간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찾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칠 것이다” MB집권 이후 쌍용차 폭력진압, 용산참사, 기무사의 민간인 및 정치인 사찰 등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고 인권위 위원장과 사무총장에 ‘인권’과 무관한 인사들이 취임(또는 내정)되는 등 민주주의가 끝없이 후퇴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게다가 MB정권이 반민중, 반민주 악법을 비롯해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4대강 삽질경제로 국민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도 민주당이 그 반사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올초 10%대 였던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줄곧 20% 초반을 유지한 채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합과 연대 필요하지만, ‘안산상록을’은 독자 출마”

정 대표는 통렬한 반성에 이어 ‘통합’을 주창했다. “MB가 이끄는 불행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으고 연대해야 한다. 통합할 것은 통합해야 한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놓을 자세가 돼 있다” 정 대표는 이어 다음달에 있는 10.28 재보선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산상록을’에서의 범민주 단일후보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자세를 보였다. 마화용 연맹 정치위원장과 강도연 SG신용정보노조 위원장이 “대표께서 집안 싸움이 있을때 장남이 한보 양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안산상록을’에서 야3당이 단일후보를 추대한 만큼 장남인 민주당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정 대표는 “정당은 자기 당원의 당선이 1순위다. 그게 현실적이지 않을 때 반한나라당이 차선이다. 선거 장남론은 일리가 있는데, 좀 상대적이다. 4군데 재보궐 선거에서 우리가 강한 곳은 2곳인데 그 중에 한 곳을 달라면 누가 웃는 낯으로 양보하겠나? 우리 민주당은 당연히 안산에서 독자 후보를 낼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아직 누가 앞설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향후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으면 독자 후보로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비정규 문제는 정부개입 후 시장논리에 맡겨야”

이어 비정규법 등 노동문제로 넘어갔다. 정 대표는 “작년 7월 대표로 취임한 후 비정규직 문제를 제1과제로 삼았다. 정규직화를 위해 6천억원을 투입하자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반대해서 올해 4월 결국 1,892억원 반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민주당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舊 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집권했던 지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비정규직 비율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점은 거론하지 않았다.(아래 그림 참조) SG신용정보노조의 강도연 위원장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정규직화의 대안인 양 호도되고 있는데 또다른 차별의 고착화다. 민주당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실질적 대안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 대표는 “비정규직 해고 대신 무기계약직이라도 하자는 의견이 있다. 정규직 전환이 가장 좋은데, 개별 사업장에서의 전환 문제는 단위 노조가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지금은 비정규노동이 비대한 상황이라 정규직 전환시 감당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매년 1,200억원씩 3년동안 정부가 지원하자는 게 민주당 입장이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가 어느 정도 줄고 나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된다”고 답해 비정규노동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과도한 비율을 줄이고 시장경제 논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전임자 임금 금지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아”

이성은 연맹 부위원장은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문제를 거론했다. 이 부위원장은 “복수노조 금지는 ‘복수정당 금지’처럼 어처구니 없는 조항이다. 전임자임금도 세계적으로 금지하는 나라가 없고 일본도 관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관련 문제에 적극 나설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핵심 관심사일텐데 민주당의 전통적인 입장은 있고 홍영표 의원을 중심으로 입장을 재정리할 것”이라며 간담회에서는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답했다. 정 대표는 “한나라당이 제일 좋아하는게 글로벌 스탠다드인데 제멋대로 기준을 조정해서 결국 ‘MB 스탠다드’로 전락했다”고 정부안을 비판하면서 노사간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임금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정 대표는 또 “역지사지로, 대기업의 경우 전임자 100~200명이 싸울 궁리만 하고 있으면 사용자들이 얼마나 부담이 크겠나? 큰 사업장은 조합비로 해결 가능하니까 양보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대기업 양보론을 제기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욕망의 정치’를 극복할 ‘선명야당, 대안야당’

‘신자유주의 정책의 피해 사업장 당사자’라며 질문을 시작한 한국신용평가정보노조 장도중 위원장은 “민주당이 고생이 많지만 87년 민주주의 담론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바로 지금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담론이 무언가?”라고 물었다. 정 대표는 지난 4월 총선에서의 ‘욕망의 정치’를 지적했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의식이 변해 뉴타운 공약, 자산가치 상승 등 자기 이해에 집착하고 그것을 최대가치로 삼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소득수준과 교육수준도 예전과 다르게 높아졌다”며 싸우기만 하는 야당이 아닌 정책대안이 있는 야당, ‘선명야당’, ‘대안야당’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또 “예전에는 민주대연합론이었는데, 지금은 ‘민생연합’이 필요하다. 국민의 삶의질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so cool, “한은법 더 공부하겠다” “보험은 잘 몰라...”

정 대표는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한 질문은 “잘 모른다”며 솔직히 답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냐?”는 한국은행노조 배경태 위원장의 질문에 대해 “쟁점을 잘 모른다. 공부를 더 하고 오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독립’ 입장에서 흔들림없이 정책 가치를 지킬 것이며, 한국은행 출신인 이성남 의원과 함께 소통하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난 7월 금융위원회가 실손보험보장을 100%에서 90%로 축소해 손해보험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국민들의 건강권을 침해했다”는 손보노조 현대해상지부 김정수 위원장의 지적에 대해서도 “누굴 위해 축소했을까? 감독기관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 보험은 잘 몰라서... 더 알아보고 논의하자”며 에둘러 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답했다.

“중앙회 신경분리는 농민이 찬성하고 있어 난감(?)”

NH농협중앙회노조 이영초 위원장은 중앙회 신경분리 문제를 거론했다. 이 위원장은 “협동조합이라면 경제사업을 활성화해서 농민조합원들에게 득이 되게 해야 하는데 정부는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려고 한다. 이는 협동조합 운동과 정신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입장은 어떤지 물어봤다. 이에 정 대표는 “원래 협동조합은 지도 및 경제 사업을 우선해 왔는데 신용사업이 비대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문제는 농민단체가 찬성하고 있어서 정당이 무작정 반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협동조합 관련 단체들 대부분은 정부가 추진하는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안을 지지하는 게 아니고, 또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신경분리를 동의하는 조직도 전부가 아닌 일부이고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 ‘농민단체가 찬성하고 있다’는 답변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특수고용 문제 부끄럽다”

보험모집인노조 고성진 위원장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부끄럽다’와 ‘단계론’으로 답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인데, 이 문제의 시작 또한 과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집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질문자나 답변자나 난처하기는 매한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정 대표는 집권 당시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미진했다고 평하면서 “지금도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all or nothing’보다는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다”며 단계론을 피력했다.

“노동자와의 연대가 민주당 정체성에 부합”

정세균 대표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민주당이 노동운동 진영과 연대하지 못한 걸 가장 아쉬워 했다. “제일 부끄러운 것은 미국 민주당은 AFL-CIO(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와 연대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며 노동자와 연대하고 노동문제를 민주당의 문제로 인식하는 게 민주당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체력을 잘 만들어 노조와 연대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대표는 한국의 노조 조직율이 10% 안팎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노조 간부들이 더욱 분발해 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민주당도 중도세력을 어떻게 흡수하고 지지세력으로 만들지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민주당이 대안세력으로 자리잡는 것처럼 노조도 국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얻는게 필요하다”며 다같이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자며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간담회를 마쳤다.

14일 정세균 대표에 이어, 오는 16일(수)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18일(금)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다음주 화요일(22일)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초청 간담회가 이어질 예정이다.